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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과 유생의 대결 존다리안의 독서



루리웹 이야기를 또 하게 되지만 그쪽계열의 조선시대 인식은 꽤 어이가 없는게 귀신, 괴
이의 이야기로 넘쳐나는 기괴함이 숨어 있는 시대를 유생들이 계몽해서 귀신 따위 없었던
시절 마냥 이야기하는데 이글루스 역갤 뒤지다 보면 얼마나 조선시대가 귀신들과 무속으
로 점철된 시대였는지 알 수 있다. 즉 조선시대를 계몽된 시대 운운하는 것은 무지의 소
산이다.


사실 조선시대는 의외로 외침은 잦지 않았지만 (우리민족이 외침에 유난히 시달린 민족이
라 부르는 것은 그만한 뻥이 없다.) 호환에서부터 기근, 전염병 등 인간이 어찌 하기 힘든
여러 재앙은 계속 일어났다. 특히 조선땅에서는 주로 쌀을 재배했으나 수리시설만 갖춰 가
지고는 쌀이 제대로 자랄 지도 의문스러운 기후 특성 탓에 그해 농사는 사실상 하늘에 맡
겨야 하는 부분이 많았고 선농단 같은 곳은 이러한 하늘에 왕이 빌어서 올해의 생산성을
보장해 달라 비는 즉 왕이 제사장인 사당 같은 곳이었다.

따지고 보면 선비 유자가 기원이 제사지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사실상 유림의 기
원은 무당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 단지 세월이 지나며 세속화된 집권층에 가까워진 것 뿐이
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네 토착 무속과 충돌하면서도 이들과 일종의 “양해” 관계
룰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무속은 민중에 이미 깊이 파고들어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종교
적 만족감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탓에
요새 신내림 가지고 사기치는 범죄자들이 생기긴 했지만....)

게다가 불교의 경우도 숭유억불을 외치며 유림은 끊임없이 국내 불교를 탄압했지만 조선
의 상국인 명나라가 불교에 대해 그리 탄압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불교에 적대적인 조선을
안좋게 볼 수 있기도 했다는 점에서 불교를 탄압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고 뿐만 아니라 불
교 역시 민중의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며 이렇게 유림이 민중을 교화하는데 한
계를 보인 가운데 결국 서구에서 날아온 기독
교가 새로이 뿌리를 내림으로서 유림의 민중
의 완전 교화는 오늘날 물 건너 간다.
(개인적으로 제일 놀라운 일은 기독교가 그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
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오늘날의 젊은 층들이 조선시대를 미화하며 유림을 합리적 사상의 대
표자로 내세운다는 것인데 앞서 제사지내는
사람이었던 게 유림의 기원이라는 섯을 보면
이들이 진정 소위 “서구적 합리성”(서구의 합리가 유일한 합리인지 어떤지는 제쳐두고)과
동일하거나 이와 대등한 합리성을 가졌는지는 분명치 않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무당을 대신
하고자 했던 행위들 때문에 다른 의미에서 미신과 비합리와 무관하지 않았다.




사실 오늘날 젊은층이 자신들을 유림과 동일시하려 드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봐서 오늘날
급변하는 세계, 노동보다 자본이 보다 확실한 기반이 되기도 하며 더 나아가 정량적인 스펙
보다 가치변동이 심한 정성적인 요소가 가치를 가지게 되는 시대에 대한 불안감과 좌절감
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과거 즉 7~90년대까지는 쭉 공부만 하고 주입식 교육대로 달달 외서 명문대 들어가면
일사천리로 입사하고 연공제 덕으로 짬밥만 올라가면 월급도 오르고 노후도 보장되는
물론 힘들긴 하지만 그만큼의 보장이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별의별 스펙으로 무장해도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이며 겨우 취업해도
계약직, 비정규직이어서 언제 잘릴 지 모르고 최저임금이 올랐다 하는데 그만큼 연봉인상은
꿈꾸기 힘든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쯤되면 차라리 뭘 달달 외기만 하면 되었던 7~90년대
아니 조선시대가 나을 지경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은 조선시대 때 뭘 달달 욀 정도로 공부할 수 있으려면 양반집에서 태어나야 하는 게
함정)

종종 루리웹에서는 헬창이 되어 쇠질만 해도 아이키도 따위는 이긴다는 소리를 한다.(실전
은 어떨지 두고 봐야겠지만...)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근육량과 체중 같은 그들이 측정 가능
한 “정량적”인 가치를 스킬 같은 “정성적”인 가치보다 높은 데 둔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는 정성적인 능력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정량적 가치가 효율적으로 구현되는 것은 어렵다.

솔직히 3D 모델링 일자무식인 놈에게 고사양 데스크탑 줘봤자 디자인 하나 제대로 내놓을
리는 없지 않은가?

이야기가 좀 삼천포로 빠지기는 했지만 아뭏든 오늘날 많은 젊은층들이 가지는 조선에
대한 환상이 저 책으로 좀 가셨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덧글

  • rumic71 2021/05/05 20:28 #

    왜정 때 기록만 보아도 '계몽'따윈 턱도 없는 상황이었단 걸 쉽게 알 수 있는데 말이죠.
  • 존다리안 2021/05/05 20:31 #

    참 황당한 게 그렇게 구한말 집집마다 공자왈 맹자왈 하던 사람들이 지 조상 무덤이 어딘지 몰라서 묘지 비석 다 뽑아 가져다 글 아는 사람에게 보여주려 했다는 걸 보면 이땅의 사람들이 글을 잘 읽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문맹이 극에 달했던 사람들인지 도통 알다가 모르겠습니다.

    실은 현대도 한국인들은 글 자체는 읽을 줄 아는데 의미를 잘 모르는 “실질적 문맹률”이 상당히 높다고 하던데.,,
  • LAZENCA 2021/05/06 18:51 #

    만동묘가 1937년까지 존재했음을 감안하면 놀랍지도 않습니다.
  • 흑범 2021/05/08 18:01 #

    1940년대에도 비석을 쓸때

    숭정기원 몇년, 영력 몇년을 썼다고 하지요.

    백범일지, 윤치호 일기에는 1920년대에도 영력이니 숭정기원이니 하는 날짜를 쓰는 사람들 이야기도 있습니다.
  • KittyHawk 2021/05/06 16:26 #

    일제때까지 유지된 만동묘 건만 봐도 쉽게 답이 나오는 부분이죠. 그걸 우리 손으로 해체한 것도 아니라 일본에 의해서였다는 것도 참...(왜란 때 만력제에게 도움을 받은 게 있어서였다고는 해도 굳이 그렇게까지 표출해야 했느냐로 생각이 넘어가면 여러모로...)
  • 흑범 2021/05/08 18:02 #

    직접 보고 겪지 못한 것에 대한 이상한 환상들은 이제그만 내려놓을 때도 됐는데... 어떻게 3천만이 대졸인 시대에 이성, 냉철한 판단력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당장 면단위, 읍단위 시골이나 퇴락한 공단지역 가보면 1930년대생, 1940년대생, 1950년대생 정도만 돼도 글씨 못쓰고, 글씨 못읽는 사람들 널렸습니다. 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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